땅위에 산다는 것







자신을 여전히 민중미술가로 호명한다면, 어떤 느낌?
무어라 부르건 상관없다. 나는 이승에서 김영화일 뿐. 무언가 피가 끓는 거 하고 싶어서 하는 게 그렇게 불릴 뿐이다.

지난 10여 년 동안 근황은? 오랫동안 도심에서 살다 작년에 용인으로 작업실을 옮겼는데 변화는?
내게 지난 10여 년은 하얀 기억이다. 10 년만 되돌려 준다면 지구를 들 것 같다. 한동안 시골에서 문 걸어 잠그고 목숨을 연명했던 사람이다. 도시에서는 정신 사나워 못산다.

화면에 등장하는 이미지들이 좀 무섭다. 무슨 이유라도? 악몽을 자주 꾸나?
내 그림을 무섭다고들 한다. 가까운 사람들은 그림을 줘도 싫단다. 살아있는 게 악몽 아닌가? 그거 좋게 해보려고 위빠사나 명상을 했다. 도로나무아미타불.

돈이 싫은가? 그림으로 돈을 버는 건 어떤가? 그림으로 돈을 번다면 어디다 어떻게 쓸건가?
? 좋다. 너무 좋다. 이 판떼기에서 돈은 하느님이다. 양아치 하느님. 내가 돈을 번다면 그나마 벌었다면 그림으로다. 앞으로 돈을 번다면
, 우선은 생존 그리고 가난한 여행. 몽골에 가고 싶다, 말 타러.

지역화폐운동? 이 무신 뚱딴지 같은 소린가?
뚱딴지 아니고, 알고 보면 이거야말로 국가자본의 횡포에서 벗어나는 힘센 시민운동이다. 어떻게 실천할 것인가? 그들은 실패했다. 국가압력으로, 내부 분열로. 내게 아직 명확한 답은 없다. 몸으로 움직이기 전에는.

지역화폐운동으로 자본의 현재적 모순으로부터 도망갈 수 있다고 보는가?
자본의 가장 추잡한 속성인 무한경쟁, 약육강식 등을 어떻게 손보게 되지 않을까? 턱끝으로 부리는 노동이 아니고 나만이 할 수 있는 노동이 살림밑천이 되고
뭐 그런 율도국스러운... 당장 전면적인 실현은 어렵고, 한걸음씩 땅을 넓혀 나아갈 수 있다면 좋겠다.

글쎄, 지역화폐운동은 이념이라기 보다는 좀 가벼워 보인다. 그저 몇 사람들이 잘난척하는 수작 아닌가?
인정한다. 잘난척 있다. 많은 진보운동들이 그렇듯 주둥이로만 떠들어대는. 그러나 어떻게든 이 시대를 살아내야만 할 것 아닌가? 이쯤에서 지역화폐운동은 내게 가장 크게 보인다.

이번 전시 ‘것 수트라’는 <오감도 횡령건>의 첫째판이라 명명했다. 전체 기획을 좀 쉽게 설명한다면?
사실 제목에 다 들어있다. 김영화는 세계를 이렇게 본다. 근데 횡령은 또 뭐야
여시아문, 붓다는 이렇게 말했다라 하지 않고 ‘붓다가 말한 것을 나는 이렇게 들었다’ 이건데, 있는 그대로 본다는 위빠사나다. 그런데 과연 인간은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을까? 아니다. 현미경을 통해서 볼까? 아닌 거 같다. 현미경이 보는 게 아닐까? “현대는 시뮬라크르 시대다.”라는 말에 피눈물이 난다. 그렇게 보는 나를 보는. 횡령이다. 복잡한가? 복잡하다. 인간이니까.

두 번째 기획인 광기의 경전, ‘갈보집에서’ 역시 기대된다. 살포시. 의도와 내용을 공개한다면?
갈보집에서? 오금이 저리도록 훌륭한 제목 아닌가? 윈도우를 어디다 들이대느냐가 관건인데이를테면 작가들은 다 갈보다,  이럴 수도 있고 또…  모판이 될 ‘발코니’는 맨바닥 삶을 살아낸 사생아 장 주네의 가장 형이상학적인 작품이라 한다. 거울, 정신분열, 혁명, 게다가 제3의 눈까지 총출동한다. 오감도와 엇비슷하다. 나는 이것을 통째로 횡령해야 하는데, 천하의 불여우 벨라스케스가 어른거린다. 근데, 뭔 살포시?  평론가들은 다 갈보닷! 이럴 수도 있다는 걸 잊지마시라. 하긴 내가 그런다고 뭐.

화폐, 자본에 대한 문제의식은 매우 현실적인데 반해 주제는 의외로 관념적으로 보인다. 이유는?
이런 예술질, 그러니까 딴따라질은 문지방에서 저지르는 관념질이다. 허공에다 대고 주먹질내가 갤러리 안팎에서 뭔 지랄을 해도 현실은 요지부동이다. 그게 문제라니까 그게.

불교의 영향이 눈에 뜨인다. 운동의 차원에서 삶의 모순을 치열한 투쟁을 통해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와 억겁의 영원 속에서 삶을 사소한 일로 해소하려는 불교적 세계관 사이에 갈등은 없었나?
종교가 아니라 종교성을. 이른바 저항은 억겁에서 찰나를 오지게 사는 방법이다.

개인적으론 ‘0 won’에서 보여진 기괴한 형상의 출처가 궁금하다. 이미지의 내용은 어디서 어떻게 마주친 형상인지? 특별한 에피소드라도?
천기누설 하겠다. You’re a manI’m a God. This is a tragedy.  Dionysus in 69. 그 연극에 나오는 한 컷. 83년쯤엔가 그린건데 얼굴이 누굴 닮았다. 그걸 다시 손봤다. 요즘 하도 피곤해서 박카스를 마신다. 근데, 디오니소스가 바로 박카스신 아닌가? 그래서? 그렇다는 거다.

어떤 그림에는 제목이 없고, 또 제목만 있는 그림이 있다. 이 무슨 황당한 시츄에이션인가? 의도는?
거울뉴런. 세상이 황당무지로소이다. 의도? 산소는 언제 발견되었을까

다시 지역화폐 문제로 돌아가 보자. 지역화폐운동의 큰 줄기를 요약해 달라. 그리고 그 줄기 속에서 당신의 그림이 위치하는 지점은 어디인가?
기존의 지역화폐 개념을 뒤집었다. 그들의 지역화폐. 747 로는 그들만의 747, CO2로는 탄소배출권을. 참고로 나는 이 탄소배출권으로 드러난 글로벌 녹색사업을 글러먹을 사기라 본다. 엘 고어가 ‘불편한 진실’로 누구의 입장을 대변했을까? FRB, 미국은 국민 세금을 담보로 이 FRB(미연방준비제도이사회)의 대출을 받아 달러를 발행한다. 그러나 우리가 쓰고 있는 돈도 사채다돌고 돌아 돈이라는 그 돈은 돌고 돌면서 엄청난 이윤을 특정 집단이 독점한다. 그러나 지역통화는 오래 갖고 있을수록 손해다. 벌금이 붙는다. 이자가 아니라. 상상불허 대공황도래운운하는 이 잘난 시대에, 이게 다 돈 때문이야! 삶이 꼭 그러지는 않을지라도 이게 다 돈 때문이야… 아닌가? 아닌가?





김동일이 질문하고 김영화가 대답한 이메일인터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