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 영혼을 갈취하는.... 민중미술의 오리지널과 포스트 사이에서
김동일 (미술평론가, 문화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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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뜨거운 불꽃은 나중에서야 제 몸을 드러낸다. 꺼진 듯 보이는 잿더미 속에 묻혀 있다 무심결 흩날리는 재들을 밀쳐내고 활연히 타오른다. 나에게 ‘민중미술’이 그러하다. 사실 민중미술의 불꽃은 80년대에 타오른 것이 아니다. 그 불꽃이 절정이 아니었음은 90년대 중반 이후 갑작스러운 소진으로 증명된다. 그러나 민중미술은 여전히 강렬한 불씨를 숨긴 채 이글거리고 있다. 있다고 믿고 싶다. 90년대 이후 몇 개의 불꽃이 간헐적으로 민중미술의 기억을 호출하기는 했다. 그 가능성은 스러져버린 듯 숨죽이다 어느 순간, 어딘가에서, 어떤 형태로든, 또 다시 화염으로 일어날 수 있다. 물론, 그 화염이 80년대에서 보인 방식은 아닐 것이다. 한국현대미술의 2000년대 상황의 중추를 이루는 많은 실험은 80년대적 시도들을 어떻게 ‘변환’할 것인가라는 문제와 연관된다. 그렇게 민중미술은 잊혀지지 않은 아픈 기억이다. “자신을 미래에 투사하는 현재화된 과거”. 구조화된 전략이자 전략 속에서 구성되는 구조로서의 행위체계라는 ‘아비튀스’(habitus)를 부르디외는 이렇게 풀어낸다.
민중미술은 한국사회에서 이미 예술적 실천의 아비튀스가 되어 있는지도 모른다. ‘한국에서 예술하기’를 수행하는 예술가들의 ‘살과 피’라는 것이다. 비평적 관건은 그 ‘살과 피’의 현재와 과거를 비교하는 작업이다. 이는 민중미술을 경험하지 못한 소위 포스트민중작가들의 작업과 오리지널 사이에 설정되는 거리두기를 담론으로 추정하는 과정에서 성취된다. 그러나 더 중요한 과제는, 민중미술의 오리지널을 체험한 세대들이 포스트의 국면에서 어떤 실천을 수행하고 있는가를 추적하는 일이다. 민중미술이 아무렇게나 잊혀지기에는 아직도 분명한 상흔으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이 흔적은 교만한 변절자들의 자기부정만 아니라면 다양한 형식과 내용으로 보다 더한 효용을 제공해줄 귀중한 자원이 될 수도 있었다. 이 작업은 몇 가지 비평적 준비작업을 필요로 한다. 그 하나는 효율적인 영역 설정이다. 모던한 방식으로 민중미술의 표제어를 전유하는데 성공한 오리지널의 선배들이나 스타들에게 더 이상 비평적 관심을 둘 이유가 없다. 그들은 민중미술의 현실 문제의식 지평에서가 아니라 대규모 미술시장에서 대학에서 또는 주류미술계의 바닥에 안착했다. 그런 의미에서 민중미술은 오리지널과 포스트를 잇는 끈을 상실했다고나 할까? 그들에게는 모더니즘이 그랬던 것처럼 그저 ‘역사적 민중미술’ 정도의 표제어 부근에 자리를 마련해주는 것으로 충분해 보인다. 이제 표적은 오리지널의 후배들이다.
이들은 오리지널의 ‘파기된 기억’을 떨쳐버리기 힘든 사람들이다. 오리지널의 끝자락에서 이들이 겪었던 경험은 과거이자 미래에 투사될 현재라는 것이다. 게다가 오리지널의 몇몇 선배 혹은 스타들이 미술을 통한 현실 투쟁의 에너지를 소멸시켰던 달콤한 제도적 안정을 맛보지 못한 세대들이다. 분노와 좌절과 체념이 반복됨에도 불구하고 다시 또 붓을 잡은 사람들이다.무엇이 이들에게 붓을 내던지지 못하게 했을까? 오리지널의 가장 오리지널다운 문제의식에서 추동된 혁신을 위한 갈망이다. 그런 면에서 이들은 ‘오리지널 아닌 오리지널’ 의식으로 ‘포스트 아닌 포스트’ 미학을 위한 수정을 감행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민중미술의 포스트적 가능성은 오리지널의 국면을 경험하지 못한 2000년대 이후 사람들보다 오리지널의 막판에서 포스트의 용트림을 온몸으로 겪은 이들에게서 여실히 발견되리라는 것이 나의 판단이다. 만일 민중미술이 무너진 재 속에서 횃불로 되살아난다면, 이 불꽃을 오롯이 지피는 이들은 그들이다. 여전히 치유되지 않은 상처를 간직한 가슴으로, 눈빛으로, 손끝으로. 물론 그들의 가치는 단순히 협소한 나의 비평공간에서만 관찰되는 것은 아니다. 그들 작업은 예술과 사회와 역사가 겹치는 곳에 꿋꿋이 자리잡고 있다. 그에 부여된 상업적 잠재가치는 미술시장의 한국적 상황에서 기형적으로 성장한 yKa 일러 짝퉁 yBa로서 신진작가(young Korean artists)라 불리는 현재적 가치와 비교될 바 아니다. 그들의 작업에는 80년대와 2000년대를 관통하는 한국사회의 역사와 민중미술의 형성과 발전과 소멸과 극복을 응축하는 한국민중미술사의 지난한 과거와 도래할 미래가 고스란히 농축되어 있기 때문이다.
민중미술의 현재적 가능성을 검토하는 작업을 더하는 비평적 고안은 적합한 이론틀의 설정이다. 이에 관해 나는 아직 확신을 갖지 못한다. 어차피 비평이란 담화적 리얼리티를 구축하기 위해 이론적 자원을 외부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운명인 까닭이다.밖에서 도입된 이론을 작가의 작업 안에서 그리고 비평공동체의 동업자들 사이에서 ‘내부적 변환’으로 실행되어야 한다는 것으로, 그러한 지점에서 이 글은 이중의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 이번 김영화 개인전에 대한 나의 입장을 서술하면서 이러한 한계를 노출하는 것은 그만큼 김영화의 현재한 자리가 동시대 한국미술과 사회사의 전개과정에서 중요한 장소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김영화들의 움직임을 평가하는 과정은 한층 더 정교한 글쓰기가 요구되며 그것이 나만의 것일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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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비평이란 대상의 미학적 의미와 실천을 전혀 다른 담론의 질서 속에 재편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이러한 작업은 작품에 부여된 작가의 의도를 휘발시킬 수도 있겠지만, 비평적 탈맥락화의 오류에서 벗어나려면 작품을 비평적으로 공유하기 전에 먼저 작가의 작업이 유혹하는 전술에 다가설 필요가 있다. 내가 처음 접한 김영화의 작업은 온통 은빛 안료를 뒤집어 쓴 커다란 세 개의 캔바스였다. 지난 98년 개인전에서 보여주었던 미학적 혼란 속에서 사회에 대한 전망을 다 놓아버린 암울한 세계인식에서 그는 완전히 빠져나온 듯이 보였다. 이후,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다른 화폭들 또한 92년 두 번째 개인전에서 보여주었던 활발발한 가시성을 되찾고 있었으며 세계에 대한 명확한 입장과 해석을 내보이고 있었다. 붉고 푸른 색이 선연한 화면 가득 요동치고 있었고 그렇게 강렬한 색들은 그의 관점이 확연해진 만큼이나 세계에 대한 요구 역시 결연해지고 있었다. 그는 외친다. 파국이 오기 전에, 끝장을 보기 전에, 이동하라!그는, 그렇게, 민중미술의 오리지널들이 보여주었던 선명한 세계인식을 놓치지 않고 있었다.그렇다고 그가 그들의 관성을 그대로 관철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김영화가 맞선 세상은 그들이 맞섰던 세상이 이미 아니다. 세상은 그만큼이나 진일보했지만 그 변화 속에서 모순은 더욱 더 진저리치게 격화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 여기가 김영화의 그림으로부터 조금 멀어져야 하는 지점이다. 변화된 외양 속에서 본질적인 모순을 더욱 강고히 하는 세계를 대면하는 김영화의 미학적 전략을 판별하는 작업은 그에서 한걸음 물러설 때 비로소 보이는 종류의 비평이기 때문이다. 그는 분명한 오리지널의 입장에서 지금껏 시도되지 않았던 지극히 보수적인 모던의 형식으로 작업을 수행하고 있다. 그의 포스트는 그렇게 실험되고 있으면서 오리지널과의 관계성을 잃지 않고 있는데, 이 오래된 방식이란 그의 작업이 그다지 새로울 것 없는 ‘회화하기’를 실현하고 있다는 것이다. 캔바스 내부 공간에서 색채와 드로잉의 효과에 기반한 오브제 미학에 충실함에도 이러한 작업이 색다르게 보이는 이유는, 민중미술의 질곡과 실패를 유발한 중대한 원인으로 지적된 미학적 완성도에 대한 무관심이나 의도적인 무시를 넘어섰기 때문이다. 몇몇 오리지널들의 성공은 그들의 사회 발언이 미학의 완성을 부정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모던한 미학에 지나치게 몰두함으로써 극명한 사회의식을 기회비용으로 지불한 댓가였다. 그처럼 첨예한 발언과 미학은 함께 하기 어려운 것으로 오리지널의 성과와 한계는 민중미술의 진정한 쟁점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중요한 건 미학의 도입이 아니라 그를 통해 ‘어느 경우에 얼마만큼’ 비판의 날을 세우느냐는 것이다. 오리지널의 연장선에서 포스트의 가능성을 실험하는 김영화는 그러한 역방향의 시도를 충실히 수행하는 듯 보인다. 그는 자신의 발언이 ‘회화의 준거틀’을 통해 소통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체득하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 간과할 수 없는 성과는 그러한 전형적인 회화하기 방법을 통해 한껏 날선 비판을 성취했다는 점이다. 어떻게 그렇게 했을까? 이 점에 무게를 두고 견교하게 짜인 그의 비판적 전략에 접근하여 그가 평면을 구사하는 방식을 살펴본다. 그는 종이 조각을 겹겹이 캔바스에 얹히고 그 위에 은색 안료를 덧칠한 다음 날카로운 끌로 긁어낸 종적을 남긴다. 캔바스에 무언가를 올리는 행위가 전형적인 모더니즘의 화면 구축행위라면 그것을 내리는 행위는 사회적 의미를 부여하는 과정이다. 물감은 붙여놓기 위해서가 아니라 떼어내기 위해 붙여진다. 색은 고정불변의 오브제를 만들기 위한 것이 아니라 사회화되기 위한 미학적 재료로써 운용되고 있다. 화면에 설정되는 사회적 지표는 단순히 색을 입힌 후에 벗겨내는 행위 자체에만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행위 그 자체’에 매몰된 실험은 모더니즘의 말기에 평면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 미학주의자들의 빈번한 시도가 아니었던가?
김영화가 미학주의자들의 낡은 실험에서 벗어나는 지점은, 다소 충격적이다. 너무나 구체적이고도 분명해서 도리어 생경한, 그러나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자본주의 시대의 절대존재인 돈, ‘돈’을 보여준다. 삶을 둘러싼 은빛 세상, 그 이면에 화폐가 있다. 지금 여기에서 삶의 논리를 매개하고 전환하는 실체, 그 중심이 바로 돈이라는 것이다. 현실을 지탱하는 마력으로 찬란한 광채 뒤에서 현실을 구동시키는 뼈대인 돈, 그렇다 돈이다! 그의 ‘돈’은 ‘화폐’라는 중립적 어휘로 객관화되는 것이 아니라, 미학적 실천을 위한 제도적 권위는커녕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조차 부여받지 못한 거대한 사회적 실재다. 이 존재방식을 드러내는데 이 오래된 방법과 재료는 꽤나 효율적이다. 반질대는 은빛 저편에 도사린 이미지로서의 돈과, 이토록 분명한 삶의 구체성 너머에 불가사의하게 존재하는 돈은 미학적 실천과 사회학의 영역에서 상호변환될 수 있는 등가물이다. 이번 전시가 이러한 형식으로만 이루어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어진 다른 작업 역시 화면에 흰색을 입힌 후 지워내는 작업으로, 보일듯 말 듯 보이는 것은 찌라시 무가지를 가득 채운 대출광고 파편들이다. 삶의 근원적인 욕망에 침투함으로써 자본을 사회 조건으로 재활용하는 구조로 광고가 있으며, 그 중에서도 찌라시를 도배하는 사채광고는 가장 약한 자들을 가장 악랄하게 착취하는 금융자본의 저인망으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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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작업에서 돈의 논리로 재편된 삶의 조건에 대한 김영화의 관심과 발언은 계속되고 있다.‘있는 자’와 ‘없는 자’의 대립 속에서 돈의 논리는 계층을 구획하고 삶을 황폐화시킨다. 자본에 대한 김영화의 진단은 모호하지 않다. 자본이 역동하는 사각지대에서 자본은 자기에게 우호적이지 않은 예술적 실천에 호락호락하지 않음을 작가 자신이 누구보다 통절하게 깨달았기 때문이다. 주목할 것은 자본주의에 대한 문제의식을 구체화하는 개념적, 미학적 방법론이다. 김영화는 이를 ‘신경미학’으로 특정한다. 일반적으로 신경미학이란, 표현과 감각 경험의 상관을 다루면서 최근 들어 활발히 논의되고 있는 영역이다. 김영화가 끌어온 신경미학이란, 감각을 통해 세계가 자신을 탐침하는 방법이면서 그가 화면을 구성하는 방법이며, 그가 세계를 ‘방법하는’ 방법이다. 그에게 신경이란 생리적 감각이나 뇌의 작용일 뿐만 아니라 작가로서 자신의 가장 예리한 감수성에 관한 것이다. 그는 신경감각을 그림의 표면이 유발하는 착시효과로만 한정하지 않는다. 몸의 감각을 거쳐 산출되는 감성을 사회적 존재로서 세계와 만나는 ‘벌거벗은 공간’에 던져 놓는다. 그렇게 노출된 곳에서 감지되는 벌건 역설, 그것이 바로 자본의 본능이라는 것이다.
비판적 예술가로서 김영화의 자본과의 불화는 단순히 경제적 궁핍으로만 환원되지 않는다. 자본에 대한 김영화의 감응은 춥고 배고픔 너머에 있다. 물질적 풍요를 탐욕하지 않으므로 자본력이 그를 위협하는 효과적인 방법이 될 수는 없다. 오히려 그에게 자본은 ‘살과 피로써’ 감지되고 상상력으로 작동한다. 이 공간에서 자본은 지루한 역사가 보여주고 있거니와 종국에는 파국으로 되돌아올 결과들로 체감된다. 그가 가로지르는 상상 공간은 감각과 의식이 엇갈리는 신경망의 지각적 공간이자 개인의 육체와 감수성이 역사와 겹쳐지는 ‘사회적 신경체계’이다.이 체계에서 자본은 그로테스크한 반인반수의 괴물로 현상된다. 몸은 사람이되 머리는 맹수의 몰골을 한 이 사물은 화폐로 변형된 허황된 신화적 존재가 아니라, 캔바스 안팎을 드나들며 김영화의 의식과 감각이 혼재하는 신경 공간에서 어떻게든 현존하는 것이다. 그는 이 기괴한 물체의 위협과 그것이 자신에게 주는 공포와 전율을 작가가 위치했던 바로 그 자리를 오갈 관객들에게 전이하고자 한다. 이는 작가의 것인 동시에 금융자본의 매트릭스에서 삶을 영위하는 모든 사람들의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또 이 상상력의 공간에 역사적 사건들의 이미지 기억을 재구성한다. 일본 돈으로 표식된 화면 내부에 이승만과 김주열과 촛불시위의 무차별한 폭압 따위가 교차하는 ‘747 YEN’이 표시된다. 이처럼 서로 다른 사건을 중첩시키는 것은 그 사건들이 일본 화폐로 상징되는 국제 정치경제 논리와 무관하지 않다고 보기 때문이다. 금융자본은 한국사회라는 제한된 영역을 넘어선 초국가적인 지대에서 글로벌하게 연동되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체현되는 모순과 폭력은 이러한 자본의 세계적 확장을 관철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역사적 단편이라는 것이다. 그가 역사의 현재와 과거를 조합하는 공간은 무의식으로 출몰하는 괴수처럼 감각신경의 상상적 지평에 적극 투입된다.
캔바스 표면은 객관적 사물이나 주관적 관념이 아니라 세계를 향해 뻗친 자신의 신경망을 촉수로 육체와 정신, 역사와 개인, 무의식과 의식이 프랙탈하는 어떤 공간을 조준하는데 성공하고 있다. 이렇게 김영화의 신경미학은 단순히 작가의 일방적 주장 너머 치밀하게 고안된 화면의 내부구조를 통해 증폭된다. 오리지널과 포스트 사이에서 김영화의 신경미학의 사회적 가능성은 이처럼 모든 작업에서 중요한 모티브로 나타난다. 자본은 결코 자본 그 자체로 출몰하지 않고 감각적 환영으로 시각 인식을 기만하는 이미지로 위장한다. 자본의 문제를 보편적 신경반응에 대한 교란으로 파악하는 김영화의 미학적 형식은 어찌보면 사회 모순에 대한 명료한 회화적 인지일 수 있다. 시각물이 본질적으로 ‘본다’는 행위 과정에 대한 숙고라는 전제에서라면 그렇다. 두께를 쌓는 과정이 자본의 시신경적 변환의 결과라면 그것이 갉아낸 상흔을 게워내는 과정은 결국 뇌신경의 환란을 재촉하는 절차이며, 그렇게 자본에 대한 자가진단을 ‘살과 피로서’ 역수행한 방편을 보여주었다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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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 대한 시신경 반응을 ‘이미지’라 할 때, 김영화는 자본의 존재와 그에 대한 대항을 이미지로 변환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신경미학의 저항적 가능성을 시신경의 영역에만 한정하지는 않는다. 회화를 실천하는 작가로서 김영화에게 신경으로서의 망막의 반응은 가장 기본적인 것일 수 있지만, 시신경 체계는 ‘뇌수의 분비물’이라는 사유와 갈라낼 수 없을만큼 혼융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김영화가 이번 전시를 <것 수트라>로 호명하고 있다는 건 의미심장한 일이다. 것(gut)은 창자나 내장을 가리키며 내장은 예민하게 감수하는 감각 신경망으로 짜여진다. 수트라(Sūtra)는 깨달은 자의 가르침을 엮은 경전이다. 그렇다면, ‘것 수트라’는 신체라는 물질과 비물질로서의 정신이 혼재하는 비상(非常)한 체계를 가리키는 비비상(非非常)한 전략이란 말인가? 흥미로운 일은, 김영화가 ‘것’을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존재’인 영혼으로 반전을 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영혼의 경전, 것 수트라. 그는 이를 ‘사육(사육)’으로 변증한다. 불콰하게 뒤얽힌 선들은 살의 이미지를 에두르며, 역사적 사건의 결속을 화폐로서 들이밀었던 바로 그 방식으로 육신의 극밀한 신경망의 광장에 상상적 자본의 대표 형식인 숫자로 발정한 기호를 깊이 새겨 넣는다. 그의 작업이 근본적으로 사회적인 형식을 취하고 있다면 작가가 걸러낸 것은 지금 이 땅을 살아가고 있는 존재들을 관리하는 강력한 사회 시스템인 ‘자본주의’다. 그래서, 사육(飼育)이다. 그러나, 사육(謝肉)이다.
나는 민중미술의 새로운 가능성을 ‘포스트’라는 어휘로 지칭한다. 이는 2000년대 이후 사회문제 의식을 새로운 미학 형태로 풀어냈던 젊은 미술가들을 일컫기 위해 사용되어 왔으나, 비평적 담화공동체의 별다른 논의나 동의를 확보하지 못한 채 사라지고 말았다. 그러함에도 내가 이 불완전한 개념을 사용하는 이유는 이렇다. 그 불충분성 자체로서 민중미술의 현재와 과거에 관한 논의의 한계를 드러냄으로써 포스트라는 용어의 대척점에 놓여질 ‘오리지널’의 비평적 공간을 부각시키고자 한다. 김영화의 <것 수트라>가 위치할 장소는 민중미술의 오리지널과 포스트 사이의 비평적 공백 어딘가에서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
비평적 관점에서 민중미술의 오리지널과 포스트 사이에서 김영화가 보여주는 미학적 가능성이 어떻게 확산될 것인가를 예측하기란 쉽지 않다. 자본에 대한 고발과 저항을 이미지로 변환하는 과정이 현실적 효력을 발휘하기에는, 작가는 너무 작고 자본력은 너무 크다. 그토록 자본은 ‘사회생활’ 전체를 거머쥔 거대한 체제다. 돈 앞에 장사 없다. 자본에 대항하기 보다는 적당히 타협하는 생을 추구하는 것이 차라리 낫지 않을까? 나에게조차 돈은 그렇게 가혹하게 삶을 침탈하는 잔혹한 실체로 다가온다. 그러나 그는 이 점에 관해서만큼은 물러서지 않는다. 자본력의 현재적 작동에 대한 문제의식은 오리지널의 그 어느 선배들보다 극명하다. 회화적 저항을 지속시키는 중요한 근거가 되고 있는 이 태도는 김영화론을 서술해 나가는 과정에서 분명하게 체감된다.
무지막지한 자본의 존재만큼 그에 대한 체제 저항 역시 확연하지만 그것이 그 무슨 사회주의 혁명을 추구하는 것은 아니다. 그의 미술 실천은 회화의 협소한 영역에서만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그는 자신의 작업에 인접하는 다양한 시민개혁활동에 관심을 보내고 있으며 이른바 ‘지역화폐운동’은 그에게 매우 중대한 사회적 대안으로 보인다. 이처럼 김영화의 미학적 실천이 자본주의의 폭정에 맞서는 또 다른 시도들과 결합할 때 일정한 사회적 효과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는 사실을 부정할 근거는 없다. 반체제미술이 세상을 바꾸리라는 확신은 순진한 꿈에 불과했지만, 거대한 변환, 사회는 다시 또 다시 ‘거대한 변환’을 모색하고 있다. 김영화는 그렇게 ‘인간이라는 직업’을 가진 인간을 위한 사회의 ‘가능성들’을 위하여, 민중미술의 오리지널과 포스트 사이에서 개인과 집단 사이에서 사회와 역사의 과거와 미래 사이에서 나아갈 길을 찾고 있으며, 그가 탐색하는 길은 미술적인 차원에서뿐만 아니라 비평적인 관점에서도 탐구할만한 시도가 될 것이다. 되어야 할 것이다. 잃을 것이라고는 불가능성밖에 없지 않은가.
김동일은 [오윤론, 혹은 삶에의 의지로서의 미술]로 한국예총 미술평론부문 신인상을 2002년에 수상했다. 논문으로는 [빗자루에 대한 두 개의 시선: 현대미술에서 일상이 다루어지는 방식들](부산비엔날레 바다미술제 도록, 2006), [사회적 행위자로서 미술관에 대한 사회학적 시론](미학예술학연구 25집, 2007), [사회적 실천으로서의 양식](사회과학연구 16집 1호, 2008), [전후 한국화단의 양식투쟁 과정에 대한 사회학적 고찰](한국사회학 46집 6호, 2008) 등이 있으며 그밖에 다양한 미술비평과 작가론이 여러 미술지에 실렸다.
서강대 사회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같은 대학에서 문화사회학, 현대사회학이론을 강의하고 있으며 학술진흥재단 보호학문지원사업 상임연구원으로 재직하고 있다.